본문 바로가기
취미/재봉

나를 구속하지 않는 속옷 - 트렁크

by 선혜(鮮蕙) 2023. 9. 9.
728x90
반응형

2년 전 어느날 빨래를 개다가 갑자기 옷이 나를 구속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트렁크가 부러워졌다. 그런데 시중에서 여자트렁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옷 만들어 입는 여자가 아닌가! 없으면 만들지 뭐. 그런데 여자 트렁크를 구하기 어렵듯 여자 트렁크 패턴은 더욱 구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남자 트렁크 패턴을 구해서 남편 트렁크를 해체하지 않아도 되었다. 남자 트렁크를 어떻게 변형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여자 트렁크 패턴을 만들어 냈다. 10번을 만들어보며 패턴 수정을 했다.

완성된 트렁크를 착용했다. 대박이었다. 왜 이제껏 속옷 만드는 사람들이 여자 트렁크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쉬울 정도였다.

26년  전 친구가 "임신 때 남편 트렁크를 입었더니 정말 좋더라." 라고 했는데 꽤나 보수적이었던 나는 속으로 매우 남사스러워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그랬던 트렁크를 나이 50이 넘어 불현듯 생각해 내다니, 나도 참 그렇다.

여자들이 주로 입는 삼각팬티는 사실 초등5학년 신체에 맞춰진 사이즈라 사타구니의 림프절을 옭죄서 림프의 흐름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입어왔던 속옷이라 사람들은 그 불편함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산다.

새장에 갇혀 비상의 자유를 알지 못하는 새가 새장을 나왔을 때의 당혹감 같은 평정심을 잃게 되는 경우와 같은 것은 아닐까?

2년 전에 공장을 돌리듯 많은 트렁크를 만들어 떼샷을 찍었는데 고밀도 80수 원단으로 만들었더니 요즘 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80수 고밀도 원단 3마를 구입해서 트렁크 6장를 만들었더니 남편이 보고 "웬 사르마를 그렇게 많이 만들어?" 한다. 시어머니께서는 트렁크를 사르마라 하셨다 했다. 나도 어렸을 때 들었으려나? 기억이 안 나 네이버에 검색하니 세르비아 전통음식이라고만 나온다. 나 어렸을 적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던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고밀도 80수 아사 원단으로 만든 트렁크는 매우 얇고 가벼워 입은 느낌조차 별로 없다. 극한의 자유라고나 할까. 시접도 최소화해서 앞 중심선에만 시접을 두었는데 그것마저 쌈솔로 완성해서 피부를 스치는 것 하나 없어 속옷으로부터 최상의 자유를 누린다.

주위에 재봉하는 분이 있으면 나는 꼭 트렁크 패턴을 건네며 '트렁크 만들어 입으세요.' 한다. 그 분들도 얼마간의 터부가 있는지 바로 만들어 입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얼마 지나고 트렁크를 만들어 입게 되면 나에게 와서 '너무너무 좋다. 마음 같아선 입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라며 좋아한다.
내가 누리는 자유를 옆 사람에게 번지게 하고 스미게 하는 일은 참 멋진 일이다.



728x90
반응형

'취미 > 재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쪽염 인견원피스  (0) 2024.08.22
마11수 원피스  (0) 2024.08.11
양면패딩 까나쥬카라자켓  (0) 2024.01.19
양면패딩 클루니배기 바지  (0) 2024.01.18
여성용 트렁크 변형  (0) 202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