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집밥/발효음식

집에서 청국장 띄우기

by 선혜(鮮蕙) 2023. 10. 13.
728x90
반응형
SMALL

찬바람이 불자 남편이 청국장이 먹고 싶다고 했다. 냉동실을 찾아보니 저장해 둔 청국장이 다 떨어졌다.

예전에 언젠가 TV 고발프로그램에서 청국장 생산 공장을 본 적이 있다. 위생상태가 먹거리를 생산하는 곳일 수 없었다. 모든 청국장 생산지가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어느 공장 출신의 청국장을 사 먹고 있는지 모르고, 또 내가 사먹는 청국장의 위생상태를 알 수는 없지 않는가.

그냥 내가 만들어 먹는게 손은 가지만 속은 편하다. 환경만 맞춰주면 가정에서도 청국장은 무리없이 잘 뜬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하셨고 또 조상님들도 그렇게 띄워서 드셨으리라. 아버지는 청국장을 좋아하셨다는데 엄마는 청국장의 쿰쿰한 냄새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엄마는 청국장을 띄우지 않았다.  어렸을 적 TV드라마 '달동네'에서 똑순이 아빠가 청국장을 먹으며 쿰쿰하면서도 구수하다고 멘트를 했는데 TV를 보던 나는 청국장 냄새의 궁금함에 TV로 냄새를 송출할 수 없음을 아쉬워했었다. 

나는 결혼하고 부산 형님댁에 가서 청국장을  처음 접했다.큰애가 아직 백일 전이었다. 형님이 저녁식사 준비를 하시는데 자꾸 어디서 군내가 나는 것이었다. 어른들 식사하시기 전인데 '애가 똥 쌌구나.' 싶어 민망하면서도 아직 새댁이라 안절부절 못하며 아기의 기저귀를 들췄다. 그런데 아기의 기저귀는 깨끗했다. 그런데 거실만 나오면 아기 똥냄새 같은 군내가 났다. 그러면 다시 방에 들어가서 자고 있는 아기 기저귀를 살폈다. 

아직 어렵기만 한 시댁이어서 냄새의 출처를 알아내지도 못하고 그냥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군내의 근원지를 식사 때 알았다. 청국장 냄새였다. 처음 맡는 청국장 냄새는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어른들이 맛있게 드시는데 차마 안 먹을 수도 없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조차도 너무 생소했다. 청국장 특유의 냄새에 미끈한 식감까지 청국장은 결코 호감가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긴장 속에 먹었던 것 같다.

남편은 종종 청국장 노래를 불렀지만 차마 내 손으로는 못 끓였다. 그러다가 청국장 냄새없이 끓이는 법을 알게 되었다. 된장과 청국장을 1:1로 넣고 끓이면 청국장의 쿰쿰한 냄새가 없어졌다. 냄새를 없애게 하는 방법을 알게 된 뒤로 나는 청국장을 자주 끓일 수 있게 되었고 청국장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청국장용 콩은 보통 메주콩인 대두를 쓴다. 대두는 물에 씻으면 거품이 이는데 콩에 함유된 사포닌이 물에 녹아나는 거라고 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돌을 골라내고 두세 번 헹궈 콩양의 3배 되는 물에 담궈 불린다. 나는 아침에 콩을 씻으면 저녁에, 저녁에 씻으면 다음날 아침까지 불린다. 

콩을 불린 물은 콩사포닌이 녹아 거품이 몽글몽글 떠 있다. 콩 삶을 때 이 물을 그대로 쓴다. 콩은 통통하게 잘 불어 있다.

나는 콩을 삶지 않고 압력솥에 찐다. 예전에 엄마는 가마솥에 콩을 삶으시며 콩물이 넘치지 않도록 불조절을 하셨는데 아까운 콩물이 넘치지 않게 콩을 삶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릴 적 콩 삶는 엄마 곁에서 들은 이야기다.

동네에 이제 막 시집 온 새댁이 메주콩을 삶았더랜다. 시어머니는 콩물이 넘치지 않게 콩을 삶으라 이르고는 밭에 일하러 가셨단다. 친정에서는 어린 딸에게 콩 삶는 일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시집 온 새댁은 콩을 삶다 콩물이 넘치는 상황이 되었다. 놀란 새댁은 솥뚜껑을 눌러도 보고 콩물이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솥뚜껑 위에 무거운 것을 엎어도 보았지만 솥뚜껑은 덜그럭거리면서 콩물을 흘러내더란다. 시어머니가 밭에서 돌아와 보니 새댁이 가마솥 위에 앉아 너무 뜨겁기도 하고 콩물도 넘치고 해서 울고 있더란다. 어린 마음에도 그 새댁이 너무 가여웠다. 

콩 삶을 때 콩물이 넘칠 땐 정말 힘이 세다. 무거운 무쇠솥 뚜껑이 덜컹덜컹 들린다. 콩 삶을 때 콩물은 순간에 넘쳐버리기 때문에 콩물이 넘치지 않게 불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나는 콩을 삶지 않고 그냥 압력솥에 찐다. 압력솥에 찌면 삶을 때처럼 물을 많이 넣지 않기 때문에 넘치지도 않고 압력으로 찌다보니 콩이 아주 잘 익는다.

압력솥에 콩을 불렸던 물을 넣고 삼발이 올려 콩을 찐다. 강불에서 추가 돌고 20분을 더 가열한 뒤 중불로 줄여 10분 뜸을 들인다. 김이 다 빠지고 압력계가 내려가면 뚜껑을 연다. 연노랑색 대두는 금색에 가깝게 색이 진해져 있다. 손가락으로 으깼을 때 부드럽게 뭉그러져야 잘 익힌 상태가 된다. 

고르게 잘 발효가 일어나도록 스텐 밧드에 균일한 두께로 펼친다. 콩은 35도 정도로 식혀 발효기에 넣어야 한다. 콩이 너무 뜨거우면 고초균이 사멸한다.

위 사진은 내가 고민해서 만든 스티로폼박스 발효기다. 몇 년째 잘 사용 중이다. 전기방석이 들어가는 사이즈의 스티로폼 박스에 공기 중의 고초균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을  4개 뚫었다. 구멍이 너무 크거나 많으면 보온에 문제가 생길까봐 공기만 통할 수 있게 소심하게 뚫었다. 청국장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고초균이 앉아 발효하는 것이기 때문에 밀폐하기보다는 공기의 유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골에서는 볏짚을 구겨 콩 속에 넣는다는데 도시에서는 볏짚을 구하기도 힘들고 더구나 무농약 볏짚은 더더욱 구하기 어려워 오롯이 공기 중의 고초균에만 의지해 발효한다.

스티로폼 박스에 전기 방석을 깐다. 전기방석의 온도는 저온으로 설정해 주면 35도 정도의 온기를 가져 청국장 발효하기 딱 좋은 조건이 된다. 전기선이 나가는 부분에 작은 홈을 내면 뚜껑을 닫았을 때 아귀가 맞아 뚜껑 닫기도 편하다.

발효기에 청국장 담은 밧드를 넣고 콩이 마르지 않게 젖은 면보로 덮는다. 면보로 덮어 놓으면 발효기 뚜껑에 맺히는 수증기가 직접 콩에 떨어지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청국장을 띄운지 이틀이 되면 청국장은 알맞게 발효가 된다. 바실러스균이 득실득실해졌음이 눈에 보인다. 숟가락으로 저어보면 청국장 특유의 끈적한 실이 생겼다 사라진다. 청국장을 이틀을 넘겨 발효하게 되면 과발효가 되어 쿰쿰한 냄새가 심해진다. 쿰쿰한 냄새를 좋아한다면 조금 더 발효해도 된다. 

완성된 청국장은 밥공기에 비닐을 씌워 한 번 먹을 분량으로 소분해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청국장 콩을 으깨기도 하지만 낫토처럼 알콩으로도 즐길 수 있게 일단 알콩으로 저장한다.

이번엔 다섯 번 먹을 양으로 소분했다. 벌써부터 쿰쿰하고 끈적하며 미끄러운 청국장찌개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느낌이다. 
스티로폼 발효기를 보조 베란다에 두고 청국장을 띄우면 집에서 청국장의 쿰쿰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청국장 끓일 때도 된장을 동량으로 넣으면 특유의 청국장 냄새없이 즐길 수 있다. 청국장의 바실러스균이 사멸하지 않도록 옅은 된장국이 거의 끓을 즈음 청국장을 넣고 한번만 부르르 끓인다.
 

♥ 청국장 띄우는 법 ♥
1. 콩을 씻어 하룻밤 불린다.
2. 불린 콩을 압력솥에 찐다.
3. 잘 쪄진 콩을 35도 정도의 온도에서 마르지 않게 면보를 덮는다.
4.이틀 동안 띄우면 맛난 청국장이 완성된다.

728x90
반응형
LIST

'집밥 > 발효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된장 담그기/집된장 만들기  (0) 2023.12.12
찹쌀고추장 담그기  (1) 2023.12.05
종초 만들기  (1) 2023.10.09
콤부차 발효하기  (2) 2023.09.08
전용도구없이 수제요구르트 만들기  (0) 2023.09.03